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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경기자가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사용하여 서로 정해진 격자 부위를 칼의 이법(理法)에 따라 유호하게 때리거나 찔러 승패를 가리는 경기'이다.
검도는 칼, 혹은 검술(劍術)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우리나라 검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때에는 조의선인(早衣仙人)이 검술이나 여타 무술을 익혔고, 백제에서도 도부(刀部)를 두어 칼을 제작하였으며 병법자(兵法者=검술 사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검술이 크게 발전한 것은 신라에서였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꽃을 피움으로써 우리나라는 검술의 개화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보(劍法譜)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이다. 본국검법은 현대 검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쌍수집병검법(雙手執柄劍法)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신라에서 크게 일어난 검술은 고려 시대까지 영향을 미처발전해 내려오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숭문천무 사상이 팽배해 지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로부터 검술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그 동안 이를 계승, 발전시켜 오히려 검의 문화를 꽃 피우게 되었다.

조선조 중기까지 천대를 받아오던 검술은 임지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 중 본국검이 포함되어 군사훈련 과목으로 채택되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 뒤 고종 때인 1896년 경무청에서 치안의 필요성에 의해 경찰 교육의 한 과목으로 격검(擊劍=검술)이 채택되었고, 1904년 육군연성학교에서도 교과목에 격검을 포함시켰다.

1908년에는 한국과 일본 간 최초로 경찰관 격검대회가 열렸다. 한일 간에 검술이 교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같은해 9월, 무도기계체육부(武徒機械體育部)라는 단체가 생겨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최초의 사회체육을 시도하였는데, 여기에도 격검이 한 종목으로 들어 있었다. 이때는 이미 격검의 장비 및 연무 방식이 현대 검도와유사하게 개발되어 있었다.

1910년경 격검이라는 용어는 '검도(劍道)'라는 새로운 용어로 바뀌었다. 전토용에서 무도(武道)성격이 강한 스포츠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검도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906년에는 사립 오성학교 등에서 검도를 가르쳤고, 1920년 조선체육회가 발족된후 192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설검도관이 생겨났으니, 강낙원 선생이 창립한 조선무도관이 바로 그것이다.

1927년에는 중학교 교과목으로 정식 채택되어 지도함으로써 검도는 한층 활기를 띠게 디었고, 1935년 제 16회 전조선체육대회(현재의 전국체육대회 전신)부터 역시 검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제 강압에 의해 1938년 조선체육회는 해산되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검도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947년 서울시 경찰관 검도대회를 출발로 검도는 보다 조직적인 발전을 꾀하기에 이르렀다. 즉, 1948년에 강낙원, 서정학, 호익용, 김영달, 박종규, 김영배 선생 등 전국 100여 명의 사범급 검도인들이 창덕궁에서 모임을 갖고 '대한검사회'를 결성한 것이다. 이 회가 곧 오늘날의 대한검도회 모체다.

1950년 4월에는 제 1회 전국 경찰관 검도대회가 개최되었다. 1952년에는 대한검도회를 창립하기 위한 준비위를 발족시켰으며, 1953년에는 마침내 '대한검도회'가 창립, 발족되어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가 되었다. 이때부터 각 시도 지회가 산하단체로 설립되었으며, 제1회 전국 개인 검도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56년에는 20년만에 다시 검도가 전국체육대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59년에는 회장기 단별선수권대회와 전국학생검도대회가 시작되어 검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입증하였다.

1964년에는 학생검도연맹이 대한검도회 산하단체로 가맹되었고, 1967년에는 충무공 탄신 기념대회가 시작되었다.

1970년 학생연맹이 대학연맹과 중ㆍ고연맹으로 분리되었다. 같은해, 국제검도연맹이 창립되었으며, 대한검도회는 부회장국으로 가맹되었다.

1972년부터 실시된 소년체육대회에 검도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사와 대한검도회가 공동주최하여 대통령기 일반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1988년에는 한국사회인검도연맹이 발족하면서 제1회 한국사회인검도대회가 울산에서 열렸다.

1992년에는 본국검법 경연대회가 시작되었으며, 1993년에는 SBS전국검도왕대회가 탄생하였다.

현재 검도 인구는 약 50만 명. 대한검도회에 등록된 유단자 수만 15만 명을 넘었다.